사도 바울은 믿음은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것, 그렇기 때문에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이라면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었겠습니까. 기독교신앙의 아름다움은 세상의 아름다움과 다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지어진 집입니다.
여러 집이 아니고, 여러 몸이 아니고, 하나의 집, 하나의 몸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한 사람이 성령이 계신 거룩한 성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하나님이 부르신 너희 한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바로 교회 안에 계신다, 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사도 바울은 우상숭배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데, 특히 “나”라는 우상, “인간”이라는 우상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인데, 아름답고 거룩한 교회인데 왜 변하지 않을까요? 자신을 너무 믿기 때문입니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고 존재하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너무나 확실하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전12:31“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의 큰 은사는 바로 ‘사랑’입니다.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인내입니다.
아들 예수를 죽음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완전한 인내는, 병자와 죄인을 아름다운 한 몸의 여러 지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부족해 보이고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지체는 서로를 돌봅니다.
우리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신비하고 영적인 것, 개인적으로 편한 것, 교회가 없이도 나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영적인 존재와 교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신앙을 언제나 외부의 전통과 공동체, 교회공동체의 가르침과 단절시킨채 자의적이고 이기적이고 내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10년, 20년이 지나도 절대 변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공동체와 단절된 개인적 신앙, 그 신앙은 절대 진리를 나타내 보일 수도 없고 공적인 믿음의 확증을 갖을 수도 없습니다.
성도는 예수의 진리를 보여주고 살아내는 그리스도의 증인이며 그것이 참 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교회로 모이는 것, 예배 드리는 것,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며, 교제를 하는 것들이 중요합니다.
신령한 공동체, 영적 공동체. 그것은 사랑의 공동체일 것입니다.
우리를 참으실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날마다 또다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고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김희준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