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를 꿈꾸며” (이사야 2:1-4)

예수님께서는 2천년전에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교회를 시작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나라를 대표하는 “이스라엘”이 신약시대에는, “교회”로 대체되었고, “성도”는 영적 이스라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모든 산보다 높게, 모든 언덕보다 높게 올리셨습니다(2절).
그래서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교회가 세워지고, ”구원받은,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늘어났습니다.
2013년 기준으로, 462만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세계인구의 32%, 22억명이 기독교인이 되어, 매 주일마다 물밀듯이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1. 이와 같이, 세상 모든 민족이 예수믿고 하나님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그래서 온세상이 하나님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 “하나님의 꿈” 입니다. (2-3a절)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고”(행1:8),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라”(마28:19)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온세상의 영혼들이 구원받아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양적으로 확장되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목원은 vip를 목장으로 초청하고, 목자는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목사는 그들이 예수를 영접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함으로써,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2. 두번째 “하나님의 꿈”은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확장 시키는 것입니다(3b-4절).
그러므로 말씀에 나오는 예배자들처럼,“하나님말씀 듣기” 를 즐거워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질적으로 확장시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십시오.
그래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한 하나님나라를 만드시기 바랍니다(4절).

“갈급한 영혼의 탈출구” (시편 42:1-5)

다윗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못했고, 하나님이 자기를 떠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1-2절)

다윗이 그와같이 영적으로 황폐해진 이유

(1) 외적인 고난과 환경적인 어려움 때문에. (3)
압살롬의 반역이 있었을 때,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 바후림에 도착했을 때, 시므이가 나와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시므이가 한 말(다윗이 사울의 집안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나라를 차지했다)은 진실이 아니라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시므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다윗을 비난했고, “네 하나님이 어디있느냐, 하나님이 너를 버렸다”며 다윗을 조롱했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오랜 친구이자 동역자였던 아히도벨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결과 그는 오해받는 것이 억울하고, 친구의 배신이 슬프고, 아들에게 쫓겨가는 자기모습이 너무나 비참하여, 눈물을 주야로 흘렸습니다.

(2) 내면적이고 영적인 어려움 때문에. (4-5절앞)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도망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겼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여,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불안했던 것입니다.

해결방법: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5)
여러분, 동서남북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했을지라도, 하늘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우리가 극심한 고난과 연단을 받을 때, 때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는 멀어지고 끊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아버지와 자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러므로 “어떤 환경적인 고난, 신앙적인 어려움, 영적인 침체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다윗처럼,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공동체: 성도입니까?” (고린도전서 12:25-31)

사도 바울은 믿음은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것, 그렇기 때문에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이라면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었겠습니까. 기독교신앙의 아름다움은 세상의 아름다움과 다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지어진 집입니다.
여러 집이 아니고, 여러 몸이 아니고, 하나의 집, 하나의 몸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한 사람이 성령이 계신 거룩한 성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하나님이 부르신 너희 한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바로 교회 안에 계신다, 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사도 바울은 우상숭배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데, 특히 “나”라는 우상, “인간”이라는 우상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인데, 아름답고 거룩한 교회인데 왜 변하지 않을까요? 자신을 너무 믿기 때문입니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고 존재하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너무나 확실하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전12:31“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의 큰 은사는 바로 ‘사랑’입니다.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인내입니다.
아들 예수를 죽음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완전한 인내는, 병자와 죄인을 아름다운 한 몸의 여러 지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부족해 보이고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지체는 서로를 돌봅니다.

우리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신비하고 영적인 것, 개인적으로 편한 것, 교회가 없이도 나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영적인 존재와 교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신앙을 언제나 외부의 전통과 공동체, 교회공동체의 가르침과 단절시킨채 자의적이고 이기적이고 내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10년, 20년이 지나도 절대 변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공동체와 단절된 개인적 신앙, 그 신앙은 절대 진리를 나타내 보일 수도 없고 공적인 믿음의 확증을 갖을 수도 없습니다.
성도는 예수의 진리를 보여주고 살아내는 그리스도의 증인이며 그것이 참 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교회로 모이는 것, 예배 드리는 것,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며, 교제를 하는 것들이 중요합니다.

신령한 공동체, 영적 공동체. 그것은 사랑의 공동체일 것입니다.
우리를 참으실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날마다 또다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고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김희준 전도사)

“불완전한 준비” (역대하 30:13-22)

히스기야왕은 부친 아하스왕이 행한 우상숭배를 척결하면서 강력한 종교개혁을 실시했습니다. 히스기야가 2월 14일에, 급하게 유월절을 지내기로 한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유월절이 되자,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은 미리 준비되지 못한 채 허겁지겁 제사를 진행했습니다.
또 제사자(회중들) 역시 준비되지 못하고 부정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레위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유월절 양을 잡았습니다.
심지어, 북이스라엘에서 온 제사자들은 부정한 상태에서 유월절양을 먹음으로써 율법을 어겼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가 중보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들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용서하시고, 예배를 받아주셨습니다.

“선하신 여호와여 용서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하게 못하였을지라도 용서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외형적인 부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중보자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한 여러분 삶의 어떤 부분이 비록 작고 약하고 부족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모든 일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중보자 예수께서 여러분들을 강하게 세워주실 것이며, 보혜사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을 도우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직 안 오셨다” (요한복음 6:16-21)

예수님께서 뭍에 계실 때, 제자들은 갈릴리호수 중간에서 풍랑을 만나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 상황 속에 안 계신다, 이 상황을 모르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자기 힘과 능력으로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구나,이러다가 죽겠구나”라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17,18절).

그러나 제자들은 몰랐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미 알고 계셨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미 출발하셔서, 배 바로 옆까지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배에 올라오셔서, 풍랑을 잠잠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그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예수께서 아직 안 오셨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고난의 시간이 길어지고, 수고한 열매가 없고, 두려움과 절망이 밀려온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아직 안 오셨지만, 이제 곧 도착하실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 분이 도착하시면, “내 인생의 배 안에 들어오셔서, 내 모든 문제를 기적처럼 해결해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라는 소망을 가지십시오.

예수의 영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곧 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실 때”까지,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백성을 축복하시는 하나님” (민수기 23:13-26)

모압왕 발락과 복술가 발람은 3번이나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했지만, 오히려 3번 축복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을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본문 중에서, 18-24절말씀은 두번째로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어떤 방법으로 축복해 주시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1.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참모습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자기 죄를 회개하고,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람이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22절)
“이 백성이 암사자처럼 일어나고, 수사자처럼 일어나서” (24절)

2.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길과 교회의 갈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어디로 가라/무엇을 하라”고, 명령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주신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모든 필요한 물질과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보호하시기 때문에”, 어떤 악인도 우리를 저주할 수 없고, 어떤 사탄의 무리도 우리를 괴롭힐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