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위기를 만난 신앙인의 자세” (사 37:1-4)

히스기야는 앗수르군대의 공격을 받고, 또 랍사게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말을 듣고 나서, 슬픔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와 인생의 위기 앞에서 신앙적인 모범을 보인 결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 앗수르군대를 물리쳤습니다.  

1. 히스기야는 제일먼저 “왜 갑자기 이 위기가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환난과 징계와 굴욕의 날입니다”(3절).
그는 남유다가 갑자기 환난을 맞게 된 이유는,
“자기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와 “악한 자(앗수르)가 힘을 얻어서,
그들을 공격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히스기야처럼,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그 원인이 무엇인지(내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 악인의 공격? 하나님 주시는 시험? 자기십자가로 인한 고난?)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상황진단을 올바로 해야지, 문제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2. 히스기야는 “자기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이를 낳으려 하나, 낳을 힘이 없는 산모와도 같습니다”(3절).
주님은 우리가 겸손해져서 스스로의 무능력함과 지혜없음을 인정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며 주님의 얼굴을 구할 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대하 7:14-15)

3. 히스기야는 겸손한 마음으로 이사야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습니다. (4절)
그는 “합심기도의 능력이 크다”는 것을 알았고, “혼자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만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성도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십시오. 특히 목장에서 깊은 관계를 맺고, 깊은 기도제목까지 나눔으로써,
기도응답을 받아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지혜” (사 28:23-29)

지혜로운 농부는 씨를 뿌리기 전에, 밭을 갈고 땅을 평평하게 합니다. 그런데 길가, 돌짝, 가시덤불, 좋은 밭 등 “밭의 특성”에 따라,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갈아줘야 합니다.
(26절) 비유하자면, 하나님은 “지혜로운 농부”이시고, 우리마음은 “밭”입니다.

 1.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성격,기질,능력,성장환경,상처 등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적당한 고난을 선택하셔서 우리마음밭을 연단시키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이기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피할 길을 내셔서 능히 감당케 하십니다(고전10;13).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고난의 강도와 고난의 기간”을 조절하실 것을 믿고,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 속에는, 우리인생을 더 아름답게 경영하여, 우리를 사용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와 계획이 숨어 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로 10년 종살이 하고, 2-3년동안 감옥살이를 하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잘 훈련시켜, 애굽총리로 만들어, 온가족을 애굽으로 데려온다는 큰 계획을 품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그 고난을 통해서 사람을 다스리고, 재산과 물질을 관리하는 등 리더십의 훈련을 미리 시켰습니다.
또 감옥에서 만난 술맡은 관원장을 통해서 바로왕을 만나는 만남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마음밭을 연단시킨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사명(씨앗)”을 맡기십니다. (25-26절).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받은 유익과 숨은 잠재력이 무엇인지 다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열심히 노력했을 때 충분히 열매 맺을 수 있는 일을 사명으로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무릎 꿇는 삶” (마태복음 1:1-17)

마태복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다말, 라합, 밧세바의 예를 들어 예수님 계보에 모든 죄인들과 이방인들이 포함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죄인이자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써 값주고 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 남겨진 복음서이며, 우리 모두 그 교회의 한 부분입니다.
마태복음은 우리를 위해 쓰여진 복음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언약을 성취하는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1. “복”을 뜻하는 히브리어 “버라크” 또는 “버라카”는 blessing 이란 뜻도 있지만 “항복” 또는 “무릎꿇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2. “성도의 무릎꿇음”은 “작은 것”,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희생을 감당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는 삶, 돕는 삶, 손해보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포기함 없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입니다.

 김희준 전도사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면” (이사야 22:15-24)

셉나는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남유다의 2인자”가 되어 권력과 명예와 물질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는 왕실묘지안에 자기를 위하여 호화로운 묘지를 만들려고 하는 등 하나님주신 은혜와 축복을 자기자신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결과, 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단단히 묶어서 이방인이 사는 황무한 땅에 묻히게 하여,
주인의 집에 수치거리로 만들겠다”(17절)고 예언하셨습니다.
또, 촛대를 옮기셔서, 그가 누린 은혜와 축복을 빼앗아서,엘리야김에게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셉나는 하나님주신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만 사용했기 때문에,하나님께 버림받고, 받은 은혜를 빼앗김으로 수치스런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까?
어떤 분은 이미 구원의 은혜를 받고 영생의 축복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자녀,건강,물질,능력,일터 등 많은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여러분의 노력과 공로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1. 하나님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십시오.
“너는 너의 첫사랑을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너는 어디서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에 행한 일을 하여라.
네가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겨버리겠다” (계2:4-5)
먼저, 십자가 구원의 은혜와 첫사랑의 감격을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받은 은혜와 축복을 사용하십시오.

2. “충성된 하나님의 종(청지기)”가 되어,받은 은혜와 축복(물질,건강,재능,일터,집, 시간 등)을 주님의 교회와 이웃과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 기쁘게 흘려보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침묵” (이사야 18:1-7)

구스는 앗수르에 대항하는 연합을 만들기 위해서, 히스기야왕에게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 민첩한 구스사절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2절).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이 언젠가 앗수르를 멸망시킨 후 승리의 깃발을 올리고,
승리의 나팔을 불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3절).
그러나 실제로 이 약속은 거의 100년이 지난 BC608년에 바벨론이 앗수르를 멸망시킴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그 100년동안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하나님은 왜 악한 나라 앗수르를 멸망시키지 않는가? 왜 100년동안이나 침묵하시는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폐하여졌는가?”라고 생각하며, 낙심했을 것입니다.  

1.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용히 내리는 이슬처럼,
조용히 비추는 햇빛처럼, 우리가 비록 못 느낄지라도, 하늘에서 이세상과 하나님의 자녀들을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4절)

몸이 아프고, 무슨 일에 실패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핍박과 고난이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십시오.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서, 주님 주시는 평강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인내하시며 열심히 일하십니다. (5-6절)
비록 세월이 오래 걸리더라도,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인내하십시오. 그리고, 게으름을 버리고,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때”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용사들” (이사야 13:1-5)

바벨론은 BC625-539년까지 앗수르,아람,이스라엘,애굽의 일부에 이르기까지 넓은 땅을 차지했던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마르둑(Marduk)이라는 우상을 숭배했고,
강한 군사력으로 이웃나라를 공격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또, 부유한 시민들은 먹고 술취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악한 문화를 즐겼습니다.
그결과,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바벨론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사13:19).
바벨론을 심판하기 위해서 부르심 받은 “하나님의 용사들”은  2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의 용사들”은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holy christians)입니다. (3절)
“큰 성 바벨론”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나라이기도 하지만, 종말론적으로 보면 사탄이 권세 잡은 세상나라,
사탄의 나라를 상징합니다(계14:8,17:5,18:2). 그 안에는 우상숭배의 문화와 죄악을 저지르는 악한 문화가 가득한 곳입니다.
예를들면, 성공주의, 물질주의, 이기주의, 쾌락주의를 비롯하여, 죄를 짓고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그와같은 악한문화와 싸우고, 죄와 싸우고,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거룩하게 구별된 자가 되어“하나님의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죄를 회개함으로써, “거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딤전4:5).

2. “하나님의 용사들”은 하나님을 항상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3절)
“기쁨”은 용사들의 사기를 높여줌으로써 전쟁을 이기게 해 주는 능력이 됩니다.
환경이 어렵고 몸이 아프고 무슨 일에 실패했을 때, 낙심하면 영적전쟁에서 패배할 것입니다.
“구원의 예수님”을 기뻐하고, 인생길을 인도하시는 아버지를 기뻐하고,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믿는 믿음으로, 항상 기뻐하십시오.

그래서 거룩의 능력과 기쁨의 능력으로 죄와의 싸움,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용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시리라” (이사야 9:6-7)

오늘본문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이땅에 보내심으로써,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겠다는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 기묘자 하나님은 오묘한 계획을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6)
기묘자(Wonder)는 인간의 지혜를 초월할 정도로 아주 경이롭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기적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이방인들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과 지혜”였습니다.

그와 같이, 기묘자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없는 오묘하고 기이한 방법으로 진행되고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범사에 자기자신의 계획과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과 지혜를 의지하십시오.
특히 말씀을 통해서 인생길을 인도하실 때, 잘 이해가 안 되더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십시오.
언젠가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고난에 빠진 자기백성들을 반드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2. 하나님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열정적으로일하시는 분이십니다. (7)
하나님의 계획에는 실수가 없고, 하나님의 열심에는 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멸망하자,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겠다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신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우리의 삶과 섬김을 통해서, 이땅에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열심을 본받아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가정, 일터, 교회, 목장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뜨거운 마음으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라” (이사야 6:1-10)

이사야선지자는 웃시야왕이 죽던 해(BC739년)에 하늘성전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을 환상가운데 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영광된 경험을 했습니다.

 1.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구원으로의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5-7절)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죄인이기 때문에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스랍천사를 보내어, 그의 죄를 사하시고, 그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중보자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듣게 해 주심으로 “구원으로 인도하는 부르심”을 주실 때에, 반드시 응답하십시오.
그래서 이사야처럼 자기죄를 회개함으로, 예수를 믿고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교제로의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8절a)
이사야는 죄사함을 받은 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눈이 열려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교제의 자리”로 불러주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순종함으로써, 자기죄를 회개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성화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섬김(사역)으로의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8절b)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셨을 때,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고 자발적으로 응답하며, 선지자로서의 사명에 헌신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무슨 선한 일을 하라, 섬겨라, 사역에 참가하라” 하시면, 이사야처럼 기쁘게 순종하며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이사야 2:1-4)

예수님께서는 2천년전에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교회를 시작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나라를 대표하는 “이스라엘”이 신약시대에는, “교회”로 대체되었고, “성도”는 영적 이스라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모든 산보다 높게, 모든 언덕보다 높게 올리셨습니다(2절).
그래서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교회가 세워지고, ”구원받은,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늘어났습니다.
2013년 기준으로, 462만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세계인구의 32%, 22억명이 기독교인이 되어, 매 주일마다 물밀듯이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1. 이와 같이, 세상 모든 민족이 예수믿고 하나님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그래서 온세상이 하나님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 “하나님의 꿈” 입니다. (2-3a절)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고”(행1:8),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라”(마28:19)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온세상의 영혼들이 구원받아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양적으로 확장되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목원은 vip를 목장으로 초청하고, 목자는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목사는 그들이 예수를 영접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함으로써,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2. 두번째 “하나님의 꿈”은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확장 시키는 것입니다(3b-4절).
그러므로 말씀에 나오는 예배자들처럼,“하나님말씀 듣기” 를 즐거워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질적으로 확장시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십시오.
그래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한 하나님나라를 만드시기 바랍니다(4절).

“갈급한 영혼의 탈출구” (시편 42:1-5)

다윗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못했고, 하나님이 자기를 떠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1-2절)

다윗이 그와같이 영적으로 황폐해진 이유

(1) 외적인 고난과 환경적인 어려움 때문에. (3)
압살롬의 반역이 있었을 때,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 바후림에 도착했을 때, 시므이가 나와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시므이가 한 말(다윗이 사울의 집안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나라를 차지했다)은 진실이 아니라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시므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다윗을 비난했고, “네 하나님이 어디있느냐, 하나님이 너를 버렸다”며 다윗을 조롱했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오랜 친구이자 동역자였던 아히도벨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결과 그는 오해받는 것이 억울하고, 친구의 배신이 슬프고, 아들에게 쫓겨가는 자기모습이 너무나 비참하여, 눈물을 주야로 흘렸습니다.

(2) 내면적이고 영적인 어려움 때문에. (4-5절앞)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도망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겼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여,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불안했던 것입니다.

해결방법: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5)
여러분, 동서남북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했을지라도, 하늘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우리가 극심한 고난과 연단을 받을 때, 때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는 멀어지고 끊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아버지와 자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러므로 “어떤 환경적인 고난, 신앙적인 어려움, 영적인 침체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다윗처럼,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공동체: 성도입니까?” (고린도전서 12:25-31)

사도 바울은 믿음은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것, 그렇기 때문에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이라면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었겠습니까. 기독교신앙의 아름다움은 세상의 아름다움과 다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지어진 집입니다.
여러 집이 아니고, 여러 몸이 아니고, 하나의 집, 하나의 몸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한 사람이 성령이 계신 거룩한 성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하나님이 부르신 너희 한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바로 교회 안에 계신다, 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사도 바울은 우상숭배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데, 특히 “나”라는 우상, “인간”이라는 우상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인데, 아름답고 거룩한 교회인데 왜 변하지 않을까요? 자신을 너무 믿기 때문입니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고 존재하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너무나 확실하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전12:31“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의 큰 은사는 바로 ‘사랑’입니다.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인내입니다.
아들 예수를 죽음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완전한 인내는, 병자와 죄인을 아름다운 한 몸의 여러 지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부족해 보이고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지체는 서로를 돌봅니다.

우리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신비하고 영적인 것, 개인적으로 편한 것, 교회가 없이도 나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영적인 존재와 교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신앙을 언제나 외부의 전통과 공동체, 교회공동체의 가르침과 단절시킨채 자의적이고 이기적이고 내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10년, 20년이 지나도 절대 변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공동체와 단절된 개인적 신앙, 그 신앙은 절대 진리를 나타내 보일 수도 없고 공적인 믿음의 확증을 갖을 수도 없습니다.
성도는 예수의 진리를 보여주고 살아내는 그리스도의 증인이며 그것이 참 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교회로 모이는 것, 예배 드리는 것,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며, 교제를 하는 것들이 중요합니다.

신령한 공동체, 영적 공동체. 그것은 사랑의 공동체일 것입니다.
우리를 참으실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날마다 또다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고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김희준 전도사)

“불완전한 준비” (역대하 30:13-22)

히스기야왕은 부친 아하스왕이 행한 우상숭배를 척결하면서 강력한 종교개혁을 실시했습니다. 히스기야가 2월 14일에, 급하게 유월절을 지내기로 한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유월절이 되자,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은 미리 준비되지 못한 채 허겁지겁 제사를 진행했습니다.
또 제사자(회중들) 역시 준비되지 못하고 부정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레위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유월절 양을 잡았습니다.
심지어, 북이스라엘에서 온 제사자들은 부정한 상태에서 유월절양을 먹음으로써 율법을 어겼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가 중보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들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용서하시고, 예배를 받아주셨습니다.

“선하신 여호와여 용서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하게 못하였을지라도 용서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외형적인 부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중보자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한 여러분 삶의 어떤 부분이 비록 작고 약하고 부족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모든 일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중보자 예수께서 여러분들을 강하게 세워주실 것이며, 보혜사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을 도우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직 안 오셨다” (요한복음 6:16-21)

예수님께서 뭍에 계실 때, 제자들은 갈릴리호수 중간에서 풍랑을 만나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 상황 속에 안 계신다, 이 상황을 모르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자기 힘과 능력으로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구나,이러다가 죽겠구나”라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17,18절).

그러나 제자들은 몰랐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미 알고 계셨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미 출발하셔서, 배 바로 옆까지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배에 올라오셔서, 풍랑을 잠잠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그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예수께서 아직 안 오셨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고난의 시간이 길어지고, 수고한 열매가 없고, 두려움과 절망이 밀려온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아직 안 오셨지만, 이제 곧 도착하실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 분이 도착하시면, “내 인생의 배 안에 들어오셔서, 내 모든 문제를 기적처럼 해결해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라는 소망을 가지십시오.

예수의 영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곧 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실 때”까지,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백성을 축복하시는 하나님” (민수기 23:13-26)

모압왕 발락과 복술가 발람은 3번이나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했지만, 오히려 3번 축복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을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본문 중에서, 18-24절말씀은 두번째로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어떤 방법으로 축복해 주시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1.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참모습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자기 죄를 회개하고,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람이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22절)
“이 백성이 암사자처럼 일어나고, 수사자처럼 일어나서” (24절)

2.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길과 교회의 갈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어디로 가라/무엇을 하라”고, 명령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주신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모든 필요한 물질과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보호하시기 때문에”, 어떤 악인도 우리를 저주할 수 없고, 어떤 사탄의 무리도 우리를 괴롭힐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