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대하 18:12-17)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은 남유다의 여호사밧왕과 연합군을 만들어 아람과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400명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길르앗라못을 왕에게 주셨으니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듣기 좋은 말”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전쟁을 하면 질 것이고, 아합은 죽고, 이스라엘군인들은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13절).
화가 난 아합왕은 “듣기 싫은 말”을 전한 미가야를 감옥에 집어넣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결과는 미가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미가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참 선지자이고, 400명의
선지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듣기 때문에 자기생각을 말하는 사람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우리는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잘 들으면 미가야 같은 참 선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성령님과 교제를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400명의 거짓선지자들처럼 내 멋대로 말하고, 내 생각대로 행동하고,
심지어 사탄의 종이 되어 악한 영이 주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말씀,기도,예배”는 크리스챤 라이프의 Basic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공부 때문에,
일 때문에, 노는 것 때문에, 너무 바쁩니다. 큐티할 시간도 별로 없고, 기도할 수 있는 에너지도 별로 없습니다.

①여러분,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시간의 헌신”이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말씀,기도,예배에 충분한 시간을 드릴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②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조용한 장소”로 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진에서 떨어진 “조용한 곳(회막)”에 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과 모세처럼, 좀더 마음을 집중할 수 있고, 좀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가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 세밀하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겸손한 태도로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아합왕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미가야가 전하는 “듣기 싫은 말”
(죄를 회개하라, 하나님을 섬겨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전쟁에서 질 것이다 등)을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며 수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설교말씀을 듣거나 성경말씀을 읽을 때, 고넬료처럼(행10:33)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며 부드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겸손한 태도로 주신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신앙과 감정” (겔 36:26-27)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말씀이 들어가면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과 만나는 신앙생활을 계속하면 믿음이 성장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감정”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새언약의 약속).
이스라엘백성들은 돌같이 굳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주시는 말씀을 듣지 않았고,
하나님주시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고, 하나님주시는 뜻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1. 그러나 그들에게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새로운 마음)을 주셔서,
“인격의 변화(생각, 감정, 행동의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6절).
또, 그들의 영을 새롭게 하심으로써,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2. 그러한 “마음의 변화/영적인 갱신”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27절).
예수를 믿는 자에게 “내 영(성령)”을 넣어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그 사람을 새로운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새언약에 근거하여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때,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켜서, “9가지 인격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 중에, “사랑,기쁨,평강”은 인간의 감정입니다.
성령께서는 세상의 성공,돈,쾌락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감정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①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선한 일을 할 때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 “평강”을 느끼고, 받은 은혜에 “감사”를 느끼고,
사명에 “열정”을 느끼고,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갈망”하는 긍정적인 감정이 생깁니다.
②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게 됩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를 짓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범죄하면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연약함을 발견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교회가 핍박받는 것을 보면 “슬픔과 분노”를 느낍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감정에서부터 여러가지 감정들이 촉발되기 때문에,
사랑은 모든 거룩한 감정의 시작(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 섭리로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사랑,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사랑을 더 많이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어 “거룩한 감정”이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또, “말씀,찬양,기도,예배”를 통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옛사람이 주는 “부정적인 감정 (미움, 분노, 질투, 슬픔, 불안, 두려움, 외로움, 절망, 우울 등)을
귀신몰아내듯이 쫓아내 주실 것입니다. 

“감정을 새롭게 하십시오” (엡 4:22-24)

감정은 인격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상황과 환경이 변함에 따라 사람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정상입니다.
①긍정적인 감정: 기쁨,사랑,열심,열정,감사,평안, 갈망,보람 등
②분노,미움,슬픔,두려움,까칠함,걱정,질투,불안,복수심,절망,외로움,시기, 부끄러움,수치,괴로움,죄책감,섭섭함,적대감,우울 등.

1.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감정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쁜 의견이 없듯이, 나쁜 감정도 없습니다.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똑같이 중요하고, 똑같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기 때문에,
죄책감과 정죄감을 느끼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분노,미움 등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것은 죄다” 또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는 그런 감정이 생겼을 때, 죄책감을 느끼고, 감정을 억압하려 할 것입니다.
그 결과, ①그 억압된 감정이 계속해서 쌓이면, 언젠가는 죄를 짓는 행동(범죄)으로 나타납니다(엡4:26,27).
②또, 부정적인 감정이 내 생각과 삶을 다스리고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비참하다, 나는 외롭다, 나는 나쁜사람이다, 나는 가치가 없다,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등, 부정적인 생각에 붙잡힙니다.
그러면, 갈수록 부정적인 감정은 더 강해지고, 골방으로 더 깊이 은둔하여,
마침내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키고, 우울하게 사는 것입니다.
결국엔, 부정적인 감정에 노예가 되어, 정신적인 질병에 시달리면서 삶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감정은 존중받고 수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죄로 표현하거나, 억압하거나, 쌓아두지말고, 정당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슬프면 슬프다고, 화가나면 화가 난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감정을 가족과 친구에게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운동을 하고, 유흥을 절제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하루를 열심히 살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만드십시오. 그러면,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이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예수믿기전에 옛사람이 느꼈던 타락한 감정이냐,
예수믿고 난 후 새사람이 느끼는 거룩한 감정이냐?”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죄를 봤을 때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 일어나야지, “내 안에 성령님이 살아계시고,
내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렇지 않고, 내 안의 죄, 세상 속에 있는 죄를 봐도,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아직 감정이 성화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또는 돈,명예,권리 등을 잃어버렸을 때 생기는 분노는 옛사람이 느끼는 분노입니다.
여러분, 감정도 성화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옛사람이 주는 감정을 이기고,
주님 주시는 거룩한 감정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독을 어찌할 것인가?” (왕하 4:38-41)

오늘날 청년,중년,노인 구분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문제때문에 걱정근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말씀을 통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키가 무엇인지?”, 발견하고자 합니다.

엘리사가 선지자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생들은 흉년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큰 솥을 걸고 국을 끓이라고 했지만 음식재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생이 들판에서 독소가 있는 들호박을 따서 국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국을 먹다가, “죽음의 독” 같은 쓴맛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지금 학생들이 큰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2가지입니다.
첫번째로, 그들은 가뭄이라는 자기 능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인 환경”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그들은 좋은 채소와 나쁜 채소,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으면 안되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가 없었기 때문에, “죽음의 독”을 마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어려움은 주로 결핍된 외부 환경과 자신의 부족함때문에 옵니다.
그 결과, 인생의 쓴맛이 마치 독처럼 퍼져서, 우리의 몸,마음,영혼을 피곤하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떤 방법으로 그 어려움을 해결했을까요?
그들은 독이 든 국을 먹자마자, 자기 능력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즉시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엘리사)를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40절).

그러자 엘리사가 즉시 찾아와 가루를 솥에 던져 해독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41절).
그래서 쓴 맛이 단 맛으로 변화됨으로써, 학생들은 맛있는 국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학생들은 우리고, 엘리사는 하나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인생의 어려운 일, 두려운 일을 만났을 때,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엘리사를 생각했고 엘리사에게 문제를 부르짖어 말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환난과 고통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장”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큰 어려움을 만났을 때, 자기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학생들처럼, 제일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문제를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내 인생의 쓴맛을 제거하셔서, 맛있는 인생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인생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셔서, 기쁘고 즐거운 인생을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엘리사가 국에 가루를 뿌리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능력의 가루를 뿌려 주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Master Key”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계3:7).

“자유를 향한 갈망” (고후 3:17-18)

 주님주신 선한 마음에 자발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이런 죄를 짓지 말아야 되겠다, 욕심을 부리고 분노하는 내 성격을 고쳐야 되겠다, 말씀에 순종해야 되겠다”는
선한 마음이 생겼을 때,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 사람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선한 생각을 하고 결단을 하고 기도를 해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자유를 잃어버린 채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은 종처럼 비참하고, 죽음처럼 괴로운 것입니다(롬 7:22-24).

많은 성도들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1. “습관적인 죄” 때문입니다. 2. 마음의 상처가 많고 어둠이 많아서 “잘 변하지 않는 성격” 때문입니다.
3. 과거에 실패한 경험 때문에 “두려움”이 너무 커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를 자유케 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꽁꽁 묶어버리는 “사탄의 쇠사슬”과 같습니다.
사탄은 이 세 가지를 사용해서, 우리를 죄의 종, 사탄의 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고, 주님의 영광을
계속 바라보는 사람은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새언약의 약속(겔36:27)을 따라, 성령님은 우리에게 율법(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렇게 행할 수 있는 능력까지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이 주시는 선한 마음과 선한 명령에 순종하는 발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도 예수님처럼,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고, 온유하고 겸손한 성격으로 변화될 수 있고,
두려움을 이기고 주님기뻐하시는 일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 죄의 종으로 살던 옛사람은 죽고,
율법과 죄와 사망의 쇠사슬에서 해방된 자유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딤전4:5)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충만한 능력을 힘입으면, 3가지 사탄의 쇠사슬을 끊고 주님처럼 변화될 수 있고, 주님 주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와 자유를 얻기 위해서, 세 가지 단계를 시도해 보십시오.
1. “나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의 쇠사슬을 끊고,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고후3:17).
2. 내가 변화되고 성장하여 자유롭게 살아가는 “꿈”을 꾸십시오(히11:1).
3.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담대히 도전하고, 땀흘려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라” (시편 97:8-12)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면, 하나님의 백성들과 온세상 만물이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1절,8절).
하나님의 통치하심에는 2가지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통치”는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할 수 있습니다. (10절)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는 의와 공평입니다(2절). 그래서 하나님께서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서, “의롭고, 공평한 재판”을 진행하게 되면, 악인들에게는 자기 죄에 합당한 벌을 주실 것입니다.
반대로, 그 악인들 때문에 핍박받고 고통받았던 의인들에게는, 그들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시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물질적인 피해까지도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핍박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우리에겐 항상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악을 미워하십시오(10절).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죄와 타협하지 아니하며, 악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며, 끝까지 거룩한 믿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인에게는 하늘의 상급이 클 것입니다(마5:12).

  2. “하나님의 통치”는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할 수 있습니다. (11절)
아무리 정직한 의인이라 해도, 환경의 어려움을 당하거나 신앙의 연단을 받는 기간에는 인생이 암흑처럼 어두울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할수록, 더 큰 손해를 보고 더 많이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며, “눈물의 씨앗”을 뿌리고, “고생의 떡”을
먹는 것 같은, 서러움이 북받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도 남들처럼, 하나님을 대충 믿고, 대충 살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텐데…, 내가 왜 예수를 믿었나, 왜 말씀에 순종했나, 왜 이 일을 시작했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통치”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에, 그분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가는 의인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백성들을 항상 “선한 길/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때로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다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그 길이, 가장 선한 길이고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공의롭고 선하신 통치하심을 믿고, 인생에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항상 감사하며, 기뻐하시길 바랍니다(12절). 

 

“주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 (시편 90:13-17)

  오늘 본문은 출애굽1세대가 거의 다 죽은 상황에서 모세가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에서 “주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죄인인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주님의 긍휼”에 감사하십시오. (13절)
“정탐꾼 사건(민13장)”은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셔서 “너희는 광야를 방황하다 죽을 것이다”는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모세는 38년간의 광야생활을 하면서 약60만명의 출애굽 1세대가 이런 저런 죄를 짓고 그 즉시 죽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죄를 징계하시는 주님의 분노를 돌이켜 주셔서,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긍휼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출애굽1세대처럼, 수많은 죄를 지었고 하나님을 원망했고 실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즉시 죄에 대한 대가를 묻지 아니하시고, 오래 참으심으로 징계를 유보하셨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말씀을 읽다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주님은 그 즉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죄에 대한 징계를 유보하시는 하나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죄에서 구원하신 “긍휼의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새언약에 기초하여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십시오. (14절)
지금까지, 홍해의 기적처럼 인생의 막힌 길을 열어주시는 “엘로힘(능력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까?
병들었을 때 “여호와라파(치료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까?
배가 고프고 목 마르고 가난할 때 “여호와이레(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까?
아말렉처럼 마음을 공격하는 사람이나 가정과 사업을 공격하는 원수를 만났을 때, “여호와닛시(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까?
고난 중에 위로하시는 하나님, 외로울 때 친구가 되시는 하나님, 방황하고 있을 때 인도하시는 목자 되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까?
그렇다면, 그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손으로 하는 일에 열매를 맺게 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17절)
하나님의 함께 하시고 도우시는 은혜가 없었다면, 인생의 모든 열매는 결코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 즉 “눈에 보이는 열매”
(건강,직장, 사업,집,자동차,돈,자녀,환경,교회 등)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열매”(지식,재능,사회적 지위, 명예 등)까지, 그 모든 열매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34-40)

세상 많은 사람들이 왜 꿈을 잃어버리고, 자기자신을 잃어버립니까?
왜 자기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를 사랑하지 못할까요?
이유 중에 하나는, “다른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나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frame(세상의 가치관과 문화 등)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의 생각과 재능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에서 이김으로써 자기의 능력과 존재를 높게
평가받으려고 애쓰기 때문에 인생이 힘들고 걱정이 많고 열등감에 자주 빠집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 자기의 참모습과 꿈도 버립니다.
그 결과,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 생각하느냐 나쁘게 생각하느냐,
나를 높게 평가하느냐 낮게 평가하느냐, 나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아직도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갈1:10).
여러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느냐? 나를 얼마나 기뻐하시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고 무능력하게 보이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런 행동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이요, 순종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우리의 가치는 너무나 높고 존귀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자녀로 삼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값(가치)는 예수님의 목숨입니다(고전6:20, 벧전3:18).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목숨값을 치르고 구원받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라는
믿음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자기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우리의 능력과 업적으로 우리를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를 보고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실패하고 능력없고 가난할 때 세상사람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조롱하지만,
하나님은 “너는 내 아들을 값주고 산 소중한 내 자녀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사랑할 수 있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마22:39).

“시글락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가?” (삼상 27:1-7)

다윗은 광야생활 초창기때 두 번이나 이방인(아기스왕, 모압왕)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다윗이 광야의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의 훈련과
인격의 연단을 잘 받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이방인에게 도움을 구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불신앙적인 행동(죄)이었습니다.

1. 다윗처럼 우리는 언제든지 낙심하고 실수하고 죄를 짓는 연약한 사람입니다(1-2절).
다윗은 지난8년여동안, 사울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수없이 경험하면서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과 믿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갑자기,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두려움과 낙심의 늪으로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가드왕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시글락에서 1년 4개월의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처럼, 믿음이 좋고 연단과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환경이 힘들고 마음이 어려우면,
옛날 모습으로 되돌아가서, “두려움과 낙심”에 빠질 수 있습니다.
과거에 저질렀던 죄를 또다시 저지를 수 있고, 과거에 했던 실수를 또다시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죄는 회개하되, 낙심하거나 자기를 정죄하지 마십시오. 연약하여 쓰러지고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 앞에” 머무십시오.

2. 다윗처럼, 우리가 연약함때문에 실수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징계 중에 긍휼”을, “고난 중에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다윗은 시글락에서 두 번의 큰 징계 또는 고난(아말렉민족의 공격, 사울군대와 전쟁할 뻔한 위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긍휼과 은혜를 베푸셔서 다윗공동체를 보호하셨고,
마침내 다윗을 시글락에서 건져서 헤브론으로 보내 유다지파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다윗처럼, 연약함때문에 믿음에서 쓰러지고 실수하고 죄를 짓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이 없고, 다함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때문에 고통을 받거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때문에 앞길이 막막할 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힘입어서,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땅 시글락에서 영광의 땅 헤브론으로 옮겨주실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두 가지 전략” (대상 19:8-15)

요압군대를 중간에 두고, 남쪽성문 앞에는 암몬군대가 있고, 북쪽에는 아람연합군이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앞뒤로 적군의 압박을 받고, 숫자적으로도 아주 불리한 상황에서, 요압장군은 어떤 전략을 사용하여 승리 했을까요?
우선, 요압은 군대를 2개의 진영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부대는 자기가 이끌면서 아람연합군을 공격하고, 다른 한 부대는 동생아비새가 이끌면서 암몬군대를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 인생의 전쟁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13절)
요압은 장군으로서 성공하고 존경받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읍을 지키고, 하나님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군인의 숫자가 비록 적고 약하지만, 여호와께서 이 전쟁을 선히 여기셔서, 반드시 승리하도록 도와주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까?
그렇다면, “인생의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그 일은 더이상 여러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그 일을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는 일의 목적과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하나님나라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닌즉,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2. 성도 간에 서로 도와주고 위로하고 격려할 때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12절)
요압과 아비새는 “내가 질 것 같으면 너가 나를 도와주고, 너가 질 것 같으면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고 서로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이 형제간의 약속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라는 믿음 위에, “내 형제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믿음까지 더해졌기 때문에,
힘과 용기를 내서 적군을 향해 돌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고, 동역자입니다.

교회도 경쟁자가 아니고, 동역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서,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무너진 마음을 위로해 주고,
어려운 환경을 도와주는 형제자매가 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당신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연합한다면, 우리는 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테레사)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 (사도행전 17:24-25)

아테네사람들은 신전에 들어가서 각자의 신을 예배하며 섬겼습니다.
그들은 많은 제물을 드리고 열심히 신을 섬기면, 신이 기쁘게 받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대가로써 성공과 재물과 장수의 복을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우상숭배의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의 하나님은 그러한 우상이 아님을 가르치고자 본문말씀을 전했습니다.

특히, 이 말씀에 나타난 핵심적인 진리는,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천지의 주재(주인)이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이 완전히 자족하시고,
완전히 충만하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장 하나님과 삼위일체, 제2항)

1.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의와 공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앞에서, “나는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았습니다”라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앞에서, “나는 헌금과 헌물을 많이 드렸고,
내 소유를 다 바쳐 교회를 일으켰습니다”라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영광이 충만하신 하나님앞에서, “나는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김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라고,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시고, 자족하시고, 완전하시므로
우리의 섬김과 도움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보다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보십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를 창조하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는 행동을 했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의무적으로 하는 신앙생활과 형식적으로 하는 봉사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행동”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헌신과 섬김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의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3.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받기보다 주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때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요16:24, 행20:35)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옆에 딱 붙어서, 범사에 “나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라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깨어있는 자의 올바른 선택” (대상 12:16-18)

기독교신앙은 인간의 역사위에 뿌리를 내린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일반계시).

오늘 본문은 BC1019년쯤 일어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 당시는,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하고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성령이 떠나고 악신에 붙잡힌 사울왕 때문에, “환난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삼상 22:2)가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서, 일부 베냐민과 유다 자손이 광야요새에 은거한 다윗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이 주시는 지혜를 바탕으로, “신앙의 눈으로역사를 보았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며, 다윗을 돕고 계시고, 미래에 다윗을 왕으로 세워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실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본토,친척,아비집을 떠나는,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다윗을 찾아가서,
“다윗과 함께,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들처럼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선택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광야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이스라엘을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처럼, 신앙의 눈으로 역사의 흐름을 보고,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세상의 일들을 판단하십시오(고전6:2).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건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사건”인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악한 정치, 악한 권세, 악한 법, 악한 사회시스템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1)그래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런 악한 쪽을 선택하거나, 스스로 악한 일을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환난과 핍박이 오더라도, 하나님말씀을 기준으로 선한 일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2)특히 사울왕과의 혈연관계를 끊어버리고  다윗을 선택한 베냐민사람들처럼, 혈연, 지연,학연의 편견을 버리십시오.
“누구에게 사람이 더 많고, 누가 권력을 가졌는가”를 보지 말고, “지금 하나님의 뜻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보십시오.
“나와 얼마나 친하냐 안 친하냐, 나를 찬성하냐 반대하냐”를 보지 말고, “지금 하나님께서 누구를 돕고 계시고,
누구와 함께하시는지” 생각하십시오. “편견”을 버리고, “성령이 주시는 지혜”를 받아, “선악간에, 올바른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 다윗처럼, 인간이 주도하는 악한 역사와 싸우면서, 하나님이 주도하는 선한 역사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요 13:21-26)

예수님께서는 12제자중 “베드로,야고보,요한”을 사랑하셔서 제자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키셨는데,
그중에서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요한을 편애한 것은 아닙니다.
주의 사랑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7) 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무한하고, 공평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제자에게 공평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보다 요한이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갈망했고,
더 많이 노력했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아 누렸던 것입니다.

1. 요한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추구했습니다. (지성, Intelligence)
요한은 영적 호기심이 많아서 일찍부터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후, 예수님이 세례받는 장면을 보고, 예수님의 숙소까지 찾아가서 밤새도록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변화산에 올라갈 때,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할 때, 그를 데려갔습니다.

2. 요한은 마음이 통할만큼, “예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음, Mind)
최후의 만찬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바로 옆자리에서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팔 자가 누구입니까?”라고 조용히 속삭이며 물어보았습니다(23-25절).
그만큼 평소에 주님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은밀한 대화까지 나눌 정도로 주님과 친밀 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그 질문을 해보라고 요한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3. 요한은 주의 말씀에 순종했고, 고난과 희생을 달게 받았습니다. (의지, 행동)
다른 제자들은 도망갔지만, 요한은 예수님이 붙잡혀 계신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또, 골고다언덕에 올라가서 주님의 죽음을 목격했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머니 마리아를 11년동안 희생하며 섬겼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존재하고,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섬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전인격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래서 요한처럼, 주님께 사랑받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 (행 25:6-12)

로마총독 베스도는 바울에게 특별한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유대인들이 반발 할까봐 두려워 예루살렘공의회에서 재판 받기를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베스도의 악한 계략과 불공정한 재판이 진행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했고,
로마에 가서 황제의 재판을 받길 원하여 상소했습니다.

1. 바울이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약 5년전, 바울이 에베소에서 선교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로마를 거쳐서
 땅끝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마음의 소원을 주셨습니다(행19:21, 롬15:23).

그런데 이제서야,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기쁘신 뜻”을 보여주실 때가 있습니다(빌2:13).
그러므로 평소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된 삶을 사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그것을 소원,꿈,비전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내 능력에 비해서, “하나님주신 소원과 꿈이 너무 크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붙잡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러한 꿈과 비젼”을 주신 것은,
여러분이 그 일을 하기에 “가장 합당한 사람”이라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는 우리를 좁은 길, 고난의 길로 인도할 때가 많습니다.
바울은 죄수가 되어 로마로 가야 하는 비참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방법이 바울의 안전을 위해서 가장 좋고,
이동과정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에 그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지금은 이해가 안 되고 고난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자리가 하나님보실 때 “가장 거룩하고, 지혜롭고,
능력있는 길”(소요리문답 11번)이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주신 소원과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루하루 인내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언젠가 모든 고난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날이 올 것입니다.

“베드로가 책망 받은 이유” (갈 2:11-14)

안디옥교회에 예루살렘교회의 베드로와 일행들이 찾아와서, 이방인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루살렘교회에서 보낸 유대인들, 즉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대인그리스도인들이 그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식사를 그만두고, 슬그머니 빠져나갔습니다.
이어서, “베드로와 같이 온 유대인들”도 나가고/안디옥교회 목회자인 바나바까지도 그자리를 빠져나갔습니다(12-13절).

그때, 바울은 베드로가 복음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생활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를 책망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가진 소중한 것(명예,권세,관계 등)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는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모습을 본 유대인들이 자기를 비난함으로써 그들과의 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웠습니다.
또, 그들이 예루살렘교회에 돌아가서 소문을 내면,
교회 지도자로서 명예가 실추되고 권력이 약해질까 두려워서, 위선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소중한 것(생명,부모,남편,아내,자녀,친구,,,자동차 등)을 잃어버릴 것 같은 상황이 생기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것보다, 더 소중한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기쁨의 천국”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운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면 믿음을
버리고 말씀에 불순종하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두려움도 많고 걱정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위해서 주님 뜻대로 사용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맡김으로써 두려움을 이기십시오.

“에베소부흥의 표지들(Signs)” (행 19:11-20)

오늘말씀은 성령의 능력이 크게 나타나는 기적이야기입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바울을 흉내 내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치려 하다가, 크게 봉변을 당했습니다.
그결과, 이 사건은 순식간에 에베소전역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예수를 믿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17절).

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죄를 회개할 때, 심령의 부흥이 시작됩니다(18)
에베소 사람들은 마술사들의 마음 속에 숨겨진 죄(우상숭배, 미신, 교만,  능력을 얻어 성공하고 싶은 욕망, 돈에 대한 욕심 등)를
보시는 하나님, 그리고 죄인을 무섭게 징계하시는 크고 강하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결과,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함으로써, 죄용서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회개를 선물로 받으시고, 우리에게 죄용서의 은혜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관계”가 일(사역)보다 낫고, 은혜가 은사보다 낫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특히 신자는 더 경건해질수록, “죄에 대한 자각이 더 커지고, “양심은 더 살아납니다.
날마다 “빛되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때문에, 도덕적 표준이 높고, 작은 죄도 태산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것이 내 탓이요, 내가 사악하고 연약한 죄인입니다”라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2. 회개의 열매로서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나타날 때, 영적 부흥이 시작됩니다(19).
수많은 마술사들이 예수를 믿고 난 후 철저히 회개한 증거로서 마술에 대한 책을 불태웠습니다.
즉 그들은 소중한 직업을 버렸고, 자기를 이끌어가던 옛지식을 버렸고, 돈에 대한 욕심까지 다 버리고,
좁고 거룩한 길을 가는 제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확실한 증거는 감동을 주는 신앙고백, 경험, 간증이 아니라, 오직 삶의 열매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아 지속적으로 변화될 때 심령의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십시오” (행 16:6-10)

바울은 아시아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성령께서 길을 막으셨습니다.
또,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 바울은 북동쪽에 있는 비두니아주로 들어가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고 막으셨습니다(6-8절).

성령께서 가는 길을 막으셨다는 것은 결국, “그 일이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그런 실패를 경험하면, 낙심되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주신 사명의 길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1.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명을 이루기 위해,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두 번이나 길을 막았지만, 절망에 빠지거나, 그 자리에 주저 않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 왜 길을 막고, 실패하게 하십니까? 이럴거면, 왜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까?”라는 식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바울은 “성령의 막으심”에 순종하여, 자기 계획과 고집을 버렸습니다.
 “최선의 길은 막혔지만, 차선의 길은 무엇인가? 지금 상황에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결과, 절망하지 않고, 즉시 일어나, “차선의 길(열린 길)”을 선택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면서 일해도, 성령께서 길을 막으시면 인생에 실패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힘들게 돌아가는 길처럼 보일지라도, “차선의 길을 선택하여,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2. 성령께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길과 사명으로 인도하실 때,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바울은 “마케도니아사람이 도움을 청하는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었구나.
그래서, 나를 두 번이나 막으시고 실패하게 하셨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순종함으로써, 기독교가 유럽으로 전파되는 큰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자기를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행 14:16-17)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대가없이” 자신을 계시해 주지 않는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는 곧,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1. 불신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일반계시
(16-17)
하나님께서는 이방민족은 “택하신 사람들(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방식대로 살도록, “죄가운데 내어버려두시고, 방임”하셨습니다(16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비를 내리시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고,
먹을 것을 주시며, 기쁨을 주시는 등”(17절) 계시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계시를 일반계시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자연,양심,역사가 있습니다.

2.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을 완전하게 알 수 있도록 특별계시(성경)”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는 영의 눈을 가리고, 생각과 마음을 어둡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일반)계시해 주셔도 인간은 하나님을 온전히 발견할 수 없습니다(롬1:19-21).
그래서 하나님을 좀더 온전히 발견할 수 있도록, 택하신 백성들에게는  “특별계시”를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현현, 꿈과 환상과 기적, 특별계시의 절정인 예수그리스도의 인생(삶,죽으심,부활하심,승천하심)이 있습니다.
특히 성경은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과 모든 말씀을 기록한 “특별계시의 완성”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완전하게 나타내시고 증거하시기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 특별계시
(성경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성장하십시오. 또, 말씀의 빛으로 자기의 삶을 비춰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어디에 계시고, 무엇을 행하시고, 어디로 인도하계시고,
베풀어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발견한 후에, 최선을 다해 감사를 표현하시기 바랍니다(고전2:12).

“준비된 일군을 사용하시는 성령님” (행 13:1-3)

성령이 주도하신 오늘 말씀의 배경에는 “준비된 일군, 바울”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극적인 회심을 했고, “이방인의 사도”라는 사명을 받았을 때가 “주후 32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의 선교사로 파송받은 것은, 47년입니다.
즉, 바울은 15년이 지나야, 성령님께 본격적으로 쓰임을 받았고, 교회와 성도들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15년이라는 오랜시간동안, 세상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언더그라운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나를 세상 가운데 세우셔서,
사명과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이다” 라는 소망을 품고, 15년동안 열심히 준비하면서, 훈련받고 연단받았던 것입니다.

1. 바울은 내적으로 깊이 있는 경건훈련을 했습니다. (말씀연구,기도,사명의식 등) 바울은 회심한 후,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서, 3년을 지내면서, 고독한 수련을 했습니다.
구약말씀을 공부하면서 기독교 교리를 정리했습니다. “금식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특히,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를 깊이 생각하며, 결단했을 것입니다.
이후에도, 바울은 “경건의 습관”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등 내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성령의 뜻을 분별하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2절).

2. 바울은 사명을 받은 후 15년동안 인내하며,  “인격의 연단”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회심 직후에는 열정만 가득 차서 자기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향 다소로 도망가서 10년간 은둔하며 혈기가 죽고 겸손해졌습니다.
그러나 안디옥교회의 지도자가 된 지금은 자기의 인생과 선교사명을 위해 기도하면서, 성령님만 의지할 정도로,
인격이 연단되었고, 준비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처럼 오랫동안 인내하며, “경건의 훈련을 잘 받고, 인격을 잘 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준비된 일군”이 되어, 성령님께 크게 쓰임받으시길 바랍니다.

“은혜에 대한 두 가지 반응” (행 7:51-60)

우리 안에는 죄와 은혜가 치열하게 싸우면서 공존하고 있습니다(6,7).
즉 우리가 은혜를 적게 받으면, “은혜의 지배력”이 작아지고, “죄의 지배력”이 커집니다.
그래서 “옛사람의 습관”을 따라서, 악한 생각, 감정, 의지를 가지고, 악한 죄를 지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많이 받으면, “은혜의 지배력”이 커지고, “죄의 지배력”이 작아집니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선한 생각/선한 감정/선한 의지를 가지고, “선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1.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함으로써, 점점 더 “심각한 죄”를 짓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말씀은 회중들의 죄를 적나라하게 지적하면서, 그들의 마음과 양심을 찌르는 설교였습니다.
그러나 회중들은 목이 곧고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교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설교자 스데반에게 분노하며 일을 갈았습니다.
그결과, 조상들처럼, 스데반 같은 의인과 선지자를 돌로쳐 죽이는 심각한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2.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으로써 죄를 버리고, 더 거룩하게 삽니다.  
스데반은 “성령충만한 사람”(즉,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그가 평소에,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많이 받아서 자기 죄를 많이 죽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결과,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나니, 순교 직전에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회중들처럼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큐티와 설교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은혜를 겸손하게 받으십시오.
“은혜의 방편(말씀,기도,예배 등)”을 적극 활용함으로,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서 죄를 죽이십시오.
그래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선한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