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자아가 주는 생각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2)”

다윗은 “암몬족속의 왕, 나하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문하는 사절단을 보냅니다.
그러나, 나하스의 아들과 방백들은 “다윗이 자기들을 정탐하기 위하여, 사절단을 보냈다”고 잘못 생각했고, 사절단의 말을 의심했습니다.
그결과, 분노한 다윗이 군대를 보내서, 암몬족속을 죽이게 되는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나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똑똑하고, 판단력이 우수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 암몬사람들처럼, “생각의 오류”가 많아서, 함부로 남을 오해하거나, 의심하거나, 자기마음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Fact”(사실/진실)도 잘 모르면서, 상대방을 미워하고 공격함으로써 나와 상대방을 포함하여 공동체 전체를 어렵게 하는 죄를 짓습니다.
예를들면, 근거없이 자기마음대로 추론하는 습관, 맞다와 아니다 (또는 내 편 아니면 반대편)로만 판단하는 이분법적인 생각,
 문제가 생기면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함으로써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 등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생각의 오류”가 많습니다.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문제를 풀어주시면, “하나님은 사랑이 많은 좋은 분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고, 고난이 계속 되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나?”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의심한다면, 이것은 “생각의 오류에서 오는 죄”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생각은 오류가 많고, 실수가 많고, 자주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인 진리의 말씀은, 오류도 없고, 실수도 없고,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진리에 생각의 뿌리를 내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생각의 기둥을 세우시기 바랍니다(21).
그래서 옛사람의 생각을 뿌리뽑고, 성령이 해석해 주는 진리의 말씀만 생각만 심음으로써, “생각의 자유”를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능력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행 3:1-10)

베드로의 기도는, “즉각적인 응답”을 받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베드로의 기도에는 왜 그렇게 놀라운 응답과 능력이 나타났을까요?

1. 기도의 능력은 기도자의 마음”(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에서 흘러나옵니다(4).
베드로는 예수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3번 물었을 때, “예, 제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의 영”이 임하니까,
그는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충만하니까,
이웃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결과, 과거에는 관심도 없었고,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앉은뱅이”가
오늘에서야 눈에 보이고,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까지 생겨서, 이런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2. 기도의 능력은 기도자의 삶”(순종의 삶, 거룩한 삶, 헌신의 삶)에서 흘러나옵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을 주는 것보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6절).
이것은, 베드로가 이세상의 돈,명예,성공보다, 주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결국, “자기삶의 우선순위를 주님께 두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전인격적인 활동입니다.
그래서, “기도자의 마음과 삶의 수준”만큼만, 기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평소에, 거룩한 삶을 살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옛 자아가 주는 생각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1)” (엡 4:21-24)

성령이 들어오시면, “우리의 죽어있던 영”을 살리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이미, “영적인 존재”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혼 (마음/인격)”이 새로와짐으로써(23절),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 성화되는 것입니다.

1. 먼저, 우리는 옛 자아가 주는 생각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3).
“생각”은 “감정”을 일으키고, ”의지적인 결단”을 통해서 행동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생각”은 “감정과 의지(즉,행동)를 이끌어가면서, 통제하는 역할”까지 합니다.
“옛사람(육신)이 주는 생각”은 하나님을 의심하며/매사에 부정적이고, 절망적이고,
 자아비판적이고, 관계파괴적이고, 공격적이고, 욕심을 주고, 걱정을 주는 생각입니다.
사탄은 “우리육신의 생각”을 자극하거나, “악한 생각을 주입함”으로써, 우리를 “죄악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주시는 생각은 항상 긍정적이고,깨끗하고,소망을 주는 생각 입니다. 또, “의롭고/거룩한 생각”입니다(24절)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충만하여, “옛사람이 주는 생각, 사탄이 주는 생각, 성령이 주는 생각을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2. ”옛사람이 주는 생각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서는, “구원이 주는 칭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생각”은 아무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생각의 뿌리와 생각의 출발점”은, “십자가복음”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옛사람”은 죄인이었지만,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 “십자가의 보혈로 씻김”을 받아서,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죄 때문이든, 실패 때문이든, 어떤 이유로든지”, 자기존재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옛사람(거짓자아)이 주는 생각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시편 84:1-4)

구약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사랑하고,
성전에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쁨의 찬양과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사랑하여,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기 때문”(4절)입니다.

1. 주의 집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습니다(3).
“하나님의 집에 산다”는 것은 평생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러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다른 곳에 집을 짓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만이, “우리의 방패시요, 능력이시요,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며,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평생동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집에 거함으로써,
세상의 유혹과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2. 주의 집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받습니다.
“긍휼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인생의 고통과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셨기 때문에,
“가난한 자,병든자,상처받은 자”를 위로하셨습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마음이 슬프고/힘들고/어렵더라도,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십시오.
기도하는 가운데,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의 아픔을 체휼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한번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위로하심”을 받고, “평강과 기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십시오” (갈라디아서 5:16-17)

우리 마음 속에는 성령님의 욕망과 육체의 욕망이 대적하면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17절).

1. 우리가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면, 죄를 짓게 되어 징계와 벌을 받게 됩니다(21)
인간의 육체는 “sinful nature”(죄를 짓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육체의 욕망을 따라가서 우리 마음대로 살면
음행,더러움,방탕,우상숭배,분냄,이기심,분열 등 여러가지 죄를 범하게 됩니다(19-21절).
그리고 내가 지은 죄는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남에게 고통을 주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우리의 죄는 지극히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우리마음 속에서 우리육체의 욕망과 계속 싸우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 주시는 징계와 벌을 받게 됩니다(21절).

2.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인격이 변화되어,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22-23).
여러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선함,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그래서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특히 부모와 자녀가 다함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서, 천국 같은 가정을 만드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사 48:8-11)

“기복신앙”은 기독교안에 들어온 “인본주의”입니다. 사람이 주인이 되고 하나님을 종처럼 낮은 자리에 두는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겠다는 생각이며, 하나님말씀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오늘말씀에 나오는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중심의 삶이 아니라, “인간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8).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떠나고, 하나님말씀에 귀를 막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구체적으로(렘2:13),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말씀을 듣지 않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죄를 지었습니다.
또, 우상을 의지하고, 자기능력을 의지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결과, 하나님이 주인되는 “하나님중심의 삶”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되는 “인간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고, 자기죄를 깨닫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멸절하지 않기로 결심하셨습니다(9,10)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11절). 이스라엘은 예수믿기 전의 우리 모습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고난을 줘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완악한 자녀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감사해야만 합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서, 독생자를 죽게 하신 하나님의 열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중심적인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사 55:6-7)

우리가 하나님께 인내심을 달라고 하면 하나님은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1.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6).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환경을 허락하심으로써, 가족들끼리 사랑할 수 있는 기회,
성도들끼리 이해하고 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또, 우리에게 새로운 일과 새로운 직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도전할 수 있는 기회,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 믿음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 가난한 자, 병든 자를 보여주심으로써, 그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평소에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 주시는 특별한 기회를 발견하고, 그 기회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2. 특히, 하나님 주시는 기회 중에 가장 중요한 기회는 회개의 기회입니다(7).
우리가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하나님은 죄용서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서,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하나님 주시는 선한 기회들을 붙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탕자의 비유에서 보듯이, “회개의 기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기회
,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사십시오.

“온세상의 주권자 하나님” (사 45:1-8)

하나님은 각 사람이 이루어야 할 목적(사명)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각 사람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고레스를 선택하셔서,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4,5)
그결과, 약 170년 후에 역사에 등장한 고레스는 메데, 리디아, 바벨론을 정복한 후,
이집트까지 정복함으로써, 광대한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BC539년에 고레스칙령을 발표함으로써,
이스라엘백성들의 귀환을 허락했고, 성전건축을 재건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그는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주신 사명을 다 이룸으로써,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섭리의 손길”로 인도하십니다.  

1.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말씀과 기도와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Here and Now”,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서 있는지? 하나님께서 내게 왜 이런 가정환경과 직업과 교회를 주셨고,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고, 이런 어려움과 이런 은혜를 주셨는지,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십시오.
그러면 지금 여기서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사명”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 특히, 하나님의 마음은 온세상을 품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8)
양과 염소의 비유처럼, 하나님의 마음은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섬기는 사역에 사명감을 가지고 동참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확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사야 40:1-2)

본문말씀은 약 170년 후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고생하게 될 이스라엘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위로와 소망의 말씀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을 나의 백성이라 부르셨고, 당신을 너희의 하나님이라 호칭하셨습니다. (1)
그런데 이 호칭은 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간에 맺은 “언약관계”를 의식하여 사용한 호칭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후,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언약은 조건부 언약으로서, 백성들이 먼저 십계명과 율법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을 책임져 주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언약 (구약)은 동물의 피를 뿌리며 이스라엘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했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를 뿌리며 우리와 언약을 체결하신 것입니다(마 26:28)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반드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공급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2. 언약의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는데 실패하여 절망한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2절
) 오늘 본문말씀은 바벨론포로가 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신 위로와 소망의 말씀입니다.
비록 그들이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짓고, 언약을 깨뜨렸다 할지라도,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길 원하셨습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줌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우리가 비록 약하고 불순종하는 부분이 있다할지라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 11:20-27)

이 세상에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오빠,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갈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죽자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 후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 지났을 때,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적은 마르다 (24)
예수님께서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마르다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보통 유대인들처럼, “세상 마지막 날이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활하여 천국에 간다”(단12:2)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이 세상에서 오직 유일한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26)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 불교 이슬람 힌두교 우상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누릴 수가 없고, 부활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나(예수)를 믿는 사람”만이 육체가 부활하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진리이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또, 당신 스스로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처럼, 죽어도 육체가 부활할 것이며, 천국에 가서 영원하 생명을 누릴 것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힘들어도 날마다 기뻐하며 사십시오.
또,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사랑하는 성도가 죽었을 때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몸은 부활할 것이고,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함께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 아직도 예수믿지 않는 부모,형제,친구들을 반드시 전도하여, 함께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예수께 인도하십시오

“십자가, 그 순종의 길” (마태복음 26:47-56)

아직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여러나라에서는 번영복음과 기복신앙이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물질과 건강이 없더라도 하나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고,
 힘들지만 자기십자가를 지고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이며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심으로, 십자가 그 고난의 길이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1. 십자가의 길은 자발적인 순종으로 시작됩니다. (49-50)
예수님은 유다가 큰 무리를 데려와서 당신을 붙잡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받았습니다.
그 담대한 믿음과 용기는 기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도 고난과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는 동안,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의 사명을 이루고자 결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길은 자발적인 순종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순종은 오직 기도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동안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킴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새언약의 약속, 겔 36:26-27)  

2. 십자가의 길은 인내로 완성됩니다. (53-54)
예수님은 12군단이나 되는 천군천사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참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경말씀과 구원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온갖 조롱과 침뱉음과 채찍질과 주먹질과 못박힘과 죽음까지 참으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말씀에 순종하고 사명을 다 이룰 때까지 인내하십시오.

“하나님의 어린양” (요한복음 1:29-30)

사람은 죄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면, 양심과 죄책감이 마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문둥병자가 되어, 죄에 대한 감각이 없고, 아픔도 없어져서,
“이 정도는 죄가 아니다, 하나님도 이해해 주실 거야, 나는 꽤 착한 사람이고 의로운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죄는 필연적으로 자기자신과 이웃과 교회공동체와 피조물전체를 파괴시키고 오염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또, 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높은 담을 쌓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사 59:2-3).
그러므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핵심은 죄에 있습니다.
죄 때문에 인생이 무너지고, 죄 때문에 관계가 깨지고, 죄 때문에 가정이 붕괴되고 온세상이 고통받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목적, 1:21, 10:45)

2. 예수님은 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어린양처럼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방법, 1:29, 5:8)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어린양의 보혈을 믿고 구원받았다면, 마땅히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죄를 7가지 지적하고 있습니다(잠 6:17-19).
이것은 죄의 근본을 가르쳐 줌으로써, 신자들의 양심과 죄책감이 마비되지 않도록 죄를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죄에 대해서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와 행함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신자는 죄의 종이 되지 않고,
육체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롬6:12).

또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죄를 회개함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고후3:18).
그렇게 될 때, 온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자유” (고후 3:13-17)

바울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에 있는 거짓교사들은 여전히 할례와 같이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을 하면서,
오히려 바울을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거짓 사도라고 비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추종하는 일부 성도들도 바울을 공격함으로써,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십자가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수건이 영적인 눈을 덮어서,
구약말씀을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주께로 돌아가면, 성령께서 수건을 벗겨 그들의 영적인 눈을 열어서 복음을 깨닫게 해 주심으로,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성령이 마음에 들어오시면,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서, 영의 눈이 열립니다.
그결과 지금까지 자기를 지배해 왔던 “나쁜 생각과 감정과 습관”을 버리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래서

1.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과거에 생긴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성령께서 과거에 있었던 자기 죄와 실수를 생각나게 해 주시면, 즉시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그 경험으로 인한, 죄책감, 두려움,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할 것입니다.

2.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트라우마처럼,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고난 중에 넘치는 위로” (고후 1:1-5)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있고 도덕적인 타락과 죄악이 만연하며, 성찬과 은사가 무질서하게 행해지며,
거짓 교사가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두 번의 편지(고린도전서 포함)를 보내어, 그들을 책망하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성도는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의심했고, 바울의 인격까지 공격했습니다.
“바울이 진짜 사도냐, 진짜 목사냐? 진짜라면, 왜 그렇게 고난을 많이 당하는가?
바울은 예수님의 열두제자가 아니기 때문에 추천장도 못받는다, 바울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행동한다,
바울은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례비를 요청하지 않는다, 몸도 작고 설교도 잘 못한다”

바울은 이러한 오해와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풀고, 거짓교사와 죄를 지은 성도들을 책망하기 위해서 고린도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문으로 인해, 더 큰 비난과 수치를 당한 채, 에베소교회로 돌아온 바울은 세번째 편지(눈물의 편지, 준엄한 편지)를 썼습니다.
만일, 고린도교회가 이번에도 바울의 책망과 권면을 거절하고, 악한 자들을 책망하지 않는다면,
목회자로서 바울의 권위는 무시되고, 교회는 타락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디도를 통해 편지를 보낸 후, 바울은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근심했습니다. 게다가,
에베소에서 일어나 폭동을 피하여, 마케도냐까지 도망치듯이 마케도냐까지 왔기 때문에,
바울은 마음의 상처와 환경의 고난 때문에 심한 우울증과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1. 하나님은 고난 당한 성도를 반드시 위로해 주십니다. (3-4)

디도가 마케도냐로 와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즉, 고린도성도들이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였고,
악한 자들을 사랑안에서 책망/징계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고난 당한 성도에게 디도 같은 사람을 보내서 위로해 주십니다. (3-4)

“죄보다 크신 하나님의 사랑” (시 78:34-39)

시편 저자인 아삽은 이스라엘의 과거 500년 역사를 돌아보면서,“이스라엘이 얼마나 죄를 반복해서 저질렀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공급하시는 사랑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부렸고 불평했고 우상을 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불신앙의 죄와 불순종의 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다가, 하나님 주시는 벌을 받으면 무서워서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입으로 하나님께 아첨하는 말이요, 하나님께 거짓으로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36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시면, 곧 다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1. 이와 같이,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너무 형통해도 죄를 지을 수 있고, 너무 어려워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7:14)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형통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웃을 섬기십시오.
그리고, 곤고할 때는 큐티와 기도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방법입니다.

2. 긍휼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죄성을 아시기 때문에, 오랫동안 참아주시고 계속해서 용서해 주십니다. (38-39)
그러므로 연약함 때문에 죄를 반복해서 짓는다 할지라도, 예수십자가의 대속을 믿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긍휼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용서해 주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실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의 수고” (고전 15:3-11)

예수믿기 전에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제자들을 핍박하며 기독교를 박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말씀은 그로부터 약 25년 후 바울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고백한 말씀입니다.

1.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충만하게 회복하십시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자기가 “만삭되지 못하여 태어난 아기”처럼 자기가
불완전한 지식과 불완전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핍박했던 것이 죄를 회개하면서,
“나의 나 된 것, 내가 예수믿고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10절)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택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특히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십자가를 바라보며, 구원의 예수님과 은혜의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새롭게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2. 구원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십시오.
바울은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수많은 고난과 맞서 싸웠습니다.
심지어,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고 외치며,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했습니다(10절).
왜냐하면 그는 육체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바울처럼, 몸과 물질과 재능을 다 바쳐서,
하나님나라와 주님주신 사명을 위하여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는 길입니다.

“사랑, 가장 좋은 길” (고전 13:4-7)

사도바울은 고린도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정의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성도들이 인간의 생각으로 사랑을 정의하고, 인간의 방법대로 사랑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간에 다툼이 생기고 죄악이 들어와서, 교회까지 순결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경지식이 많은 것도 좋고, 봉사를 많이 하는 것도 좋고, 성령의 은사가 많은 것도 좋지만,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며,
가장 좋은 길은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12:31절)  
특히, 4-7절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며,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가르쳤는데,
7절 앞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2가지를 가르쳤습니다.

1. 진정한 사랑은 남의 실수와 부족함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실수할 수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되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셈과 야벳처럼, 남의 실수와 부족함을 덮어주는 사람을 축복해 주십니다.
여러분, 부모는 자녀의 실수와 부족함을 덮어주고, 자녀는 부모의 실수와 부족함을 덮어주십시오.
직장에서는, 다른 직원들의 실수와 부족함을 덮어주십시오.
교회에서는 다른 성도들의 실수와 부족함을 덮어주십시오. 그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죄악과 불의까지 무조건 덮어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6절),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은 없습니다”(히12:7).
그러므로 죄악과 불의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하고, 안되면 징계하여 바로잡는 것이, 정의요 진정한 사랑입니다.

2. 진정한 사랑은 남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남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주십시오. 상대방이 좀 부족하더라도, 믿어주고, 맡겨주고, 세워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유를 절제하라” (고전 10:23-24)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행함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하여 무엇이든지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모든 것이 가하나” 다음 3가지를 깊이 생각하여,
자유를 절제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 자기 신앙생활에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행동만 하십시오. (23절앞)
(1) 죄가 되는 행동, 말씀에 불순종하는 행동은 절제하십시오.
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지게 하고,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2) 신앙생활에 유익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을 절제하십시오.

2. 교회공동체에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행동만 하십시오. (23절뒤)
(1)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죄가 되는 행동을 절제하십시오.
개인이 짓는 죄는 “자기 몸”만 더럽히지만, 교회안에서 짓는 죄는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에,
더 심각한 죄가 됩니다.
(2) 자기 유익보다 교회의 유익이 더 중요합니다.
내 몸보다 그리스도의 몸(교회)가 더 중요하고,
내 자유보다 교회의 덕을 세우고 교회를 튼튼하게 세우는 것이 우선순위이기 때문입니다.

3.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추구하고 남을 섬기십시오. (24)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편안함을 포기하고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유익을 포기하고,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공부해서 남주고, 돈벌어서 남주고, 집사서 남 섬기고, 건강해서 남 섬기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르심 받은 그대로 행하라” (고전 7:17-20)

“구원의 부르심”을 받은 섣불리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말고, 자기가 받은 은혜대로,
자기의 환경대로 살면서,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17절)

1. 그리스도인은 외형적인 환경(할례/무할례, 종/자유자, 부자/가난한 자 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19절)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환경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와 환경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비록 환경이 어렵고 직업이 천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갈망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기의 능력과 외적인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에 집중하기보다,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실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삶의 정황까지 함께 불러주셨습니다. (17,20절)
(1) 직업은 천직(vocation)입니다.
직업은 단순히 돈을 벌고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거룩한 일이며, 일터는 세상사람들과 만나서 예수의 사랑을 보여주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선교적 사명을 부여 받은 곳입니다.
(2) 부모의 역할은 하나님 주신 사명입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은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주신 사명이라 생각하고 기쁜마음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3) 은사와 재능도 하나님 부르심(사명)이기 때문에,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용하십시오.
(4) 마음속의 열정과 소원도 하나님 주신 부르심이기 때문에, 기도하며 이루십시오.

“성령의 능력으로 전하는 복음” (고전 2:1-5)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죄악을 책망하면서, 성경적인 해결책을 권면하기 위해 고린도전서 를 썼습니다.
특히 바울은 본문말씀을 통해서, 자기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지혜로운 말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했다고 말했습니다. (4-5절)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을까요?

1. 바울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생각했습니다. (2절)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바울은 오직 예수님만 생각했고, 예수님만 사랑했고, 예수님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자기의 재물,명예,지식을 쓰레기처럼 버리고,
무시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살전5:17, 엡6:18)

여러분, 바울처럼, 여러분의 소중한 물질,시간취미생활도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1
주일에 4일이상 큐티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십시오.
그래서 성령충만한 능력을 받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거두어, “예수닮은 인격”으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변화된 모습을 보고, 주변의 비신자들과 이웃들이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2.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만” 생각했습니다. (2절)
진정한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피흘리는 희생과 섬김의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갈2:20, 5:24)
여러분도 바울처럼,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이기심,욕심,정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이웃을 위해 희생하며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희생과 섬김에 감동하여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